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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Dal (http://vandal.pe.kr)  수정하기 삭제하기
분노하는 이유 - [야후]
[야후(Yahoo)] - 윤태호

확실히 드문 만화다.
게다가 이것은 끔찍한 재난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개인 심리에 관한 만화다. '야후'란 본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흉폭한 족속이다. 말하자면 폭력성과 잔학성으로 악명을 떨쳤던 게르만의 계파인 반달(vandal)족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흉폭해서 아이디를 vandal로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걸리버 여행기는 1부와 2부만 나온 어린이용 동화이지만 원래 스위프트의 소설은 당시 사회를 고발한 통렬한 풍자소설이라고 한다. 작가는 작중 인물 김현을 통해 야후의 시대였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를 파노라마식으로 전개해가고 있다. 내용은 단순하다. 가난한 집의 자식 김현은 자신의 집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압사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 김현이 정착하게 되는 곳은 바로 노태우 정권이 신설했다고 가상 설정한 수도경비대. 이곳은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이며 대통령 직속인 이곳은 '수경기'라고 불리는 소형 비행정을 타고 순찰을 하는 '말도 안되는' 부대다.


수경대는 여러모로 오시이 마모루의 [견랑전설]에 나오는 가상의 부대인 수도경, 그 중에서도 케로베로스라고 불리던 악명 높은 부대인 '특기대'와 유사하다. [견랑전설] 역시 일본 최대의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혁명의 60년대를 배경으로 특기대라는 역시 전혀 '말도 안되는' 부대를 다룬 이야기다. [견랑전설]이 조직과 조직 사이의 파워 게임과 그 사이에서 희생되는 개인을 다룬 영화라면 [야후]는 오히려 개인사에 중심을 둔다. 이것은 차라리 [견랑전설]을 원작으로 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인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랑]의 후세와 달리 김현의 개인적 고뇌는 사랑이 아닌, 재난과 압제로 점철된 근현대사에서 그 본질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김현이 삼풍 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또다시 압사 당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 직후 탈영하여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리는 극적 전환을 보면 만화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얼핏 짐작이 가기도 한다.

허영만님의 문하생이라고 알려진 윤태호님의 그림체는 은연 중에 허영만 선생의 흔적이 느껴진다. 분명 그것은 토종 한국 만화의 특성 중 하나지만 고도의 메카닉이 등장하는 만화를 다루기에는 약간 세련되지 못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상당히 불쾌하게 감정을 몰입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사회적 사건이라는 곁가지를 치고나면 폭발하는 청춘이라는 순수한 감수성이 남기 때문이다. 솔직히 청춘의 분노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굳이 끔찍한 현대사를 개입시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지나치게 무거워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재미로 보기에는 너무 거북하고 그렇다고 이 만화가 어떤 텍스트의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꽤 어정쩡한 지표에 놓여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야후]는 우리가 겪었던 지옥도를 생생하게 묘사해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삼풍 백화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몇 명의 사상자가 죽었으며 몇 명의 실종자가 나왔다는 수치상의 통계만을 듣는다. 또한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십 수 일을 견딘 어느 생존자가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가쉽성 기사에 치중한다. 심지어 옷이 다 벗겨진 채로 발견된 사체에 대해서 '왜 옷이 벗겨졌을까?'라는 추측성 기사까지 나돌았다. 이것은 분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지만 우리는 분노할 줄 몰랐다. 이전까지 그래왔고, 당시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후]의 삼풍 백화점에는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의 죽음이 있다. 실존의 파괴가 있고 그에 대한 분노가 있다. 지옥도를 살면서도 지옥인 줄 모르는 현대인들을 '야후'라고 매섭게 비판하는 것이 바로 이 만화 [야후]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화는 주인공 김현에 관한 만화이면서 동시에 김현에 관한 만화가 아니다. 김현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김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 속에 김현이 들어간 것이다. 김현은 주인공이지만 주동인물이 아니다. 심지어 뚜렷한 반동인물도 없다.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를 방불케하는 사람들의 판이다. 아마도 김현은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 있는 관망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관망자는 아마 여전히 혼돈에 빠져있는 우리들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vanDal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Read : 8023,  IP : 61.38.174.187
2004/01/07 Wed 13:10:32 → 2004/01/07 Wed 13: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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