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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jiro (http://blog.paran.com/yasujiro)  수정하기 삭제하기
이노센스(Innocence)
많은 마니아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이노센스]는 그다지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모티브는 작중인물들의 장황한 대사들을 통해 사전에 거의 제시되며 [천사의 알](85)를 제외한 오시이의 거의 모든 영화들이 그랬듯이 이야기의 구성은 장르영화의 그것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미스테리 퍼즐의 구조에 적절하게 삽입된 강렬하고 화려한 액션은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의 입장에서 봐도 그다지 모자람이 없다. 오시이의 영화들이 일반적으로 난해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의 영화에서 다루는 모티브가 영화광이나 '아니메'광으로서의 것이 아닌 인문 사회과학에서 다루어지는 지식들이며, 그러한 지식으로 이루어진 코드가 기존의 '아니메'수요층으로부터는 '이해불가'로 인한 격렬한 거부감을, 장르영화의 수요층으로부터는 [블레이드러너](82)로 대표되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연상선상에서 이해되어 이미 담론으로 구성된 장르론의 관점으로 영화를 도식화시켜 이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오시이의 영화는 (아주 예외적으로) 영화나 아니메의 담론보다는 인문학적 담론의 관점에서 보는것이 유용한 영화들이며 오시이 영화에 대한 격렬한 거부감은 그러한 지식의 코드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면에 드러나는것에 대한 당혹스러움도 한몫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오시이의 영화들이 장르영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오시이가 담론을 제시하는 방식이 그리 복잡한 길을 따르는건 아니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반발은 결국 "대중문화 속에서의 대중의식의 하향 평준화"를 증명하는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전편인 [공각기동대]에서 테크놀로지를 통한 의식의 전이 가능성과 그로인한 인간개념의 재구성 가능성을 제시했던 감독은 [이노센스]에서는 전편에서 다루었던 구성주의적 인간관을 인형과 육신의 대비, 또는 소프트웨어와 의식의 대비라는 관점에서 더욱 심화시킨다. 전편이 의식의 확장과 전이를 가능케 하는 네트워크의 가상현실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면 이번에는 그러한 의식의 그릇으로서 지각되는 육체 자체로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인간 주체를 형성하는 의식이 구성되는 방식이 기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기계와 같이 조작되고 전이 가능한 것이라면 인간과 기계, 또는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전통적 관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전편에서 어느정도 드러난 감독의 이러한 관점은 본편에서는 시종일관 되풀이되는 인형(사이보그)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며 여기에는 자아를 구성하는 기제로서 가장 중요한 '기억'의 문제와 전통적 섹슈얼리티 논의에서 사용되는 육체적 성차의 개념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기계화된 신체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도 끼어들고 있다.

바트와 토구사가 추적하는 연쇄살인사건. 로커스 솔루스사가 개발한 애완인형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애완인형의 자아를 구성하는 의식이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작사의 의도가 인간의 의식을 카피한 프로그램에 의해서 작동하는 인간의 모사품, '도상화된 기호'로서의 복제를 만드는것이 목적이었다고 할때 이러한 결과는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흥미로운 것이다. 퍼스(C.S Peirce)의 삼원적 관점에 볼때 인형(표상체)이라는 기호는 이를 형성하는 재료로서의 인간(대상체)과 이에 대한 제작자의 가공과정(해석과정: 또는 해석체 interpretant)의 접합으로서 형성
되는 것이다. 기호작용(semiosis)의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대상체와 해석체의 관계는 시간을 초월하여 확정되어있지 않으며 때로는 하나의 기호 안에서 분열되는 양상을 띤다. 인형이라는 자아를 구성하는 의식이 단일한 속성을 띠지 않으며 윤리코드에 따라 프로그램된 자아와 주인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감정으로서의 자아가 충돌하여 '오작동'하게되는 상황은 인간의 의식 자체가 갖고있는 다중성, 또는 분열증으로서의 속성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면에서 시사적이다. 인형을 구매하는 인간이 인형을 그저 도구로서가 아니라 때로 성적 대상으로까지 이용하는 하나의 '유사 인간'으로 지각한다고 볼때, 다시말해 인간과 인형이 같은 기호로서 지각될때 그 인형이 인간의 분열된 의식까지 그대로 재현하는 상황은 인간의 의식과 기계의 사고회로에 대한 이분법,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기계적 자아의 분열 가능성과 함께 인간 의식의 조작 가능성도 거론된다. 로커스 솔루스사의 배후에서 '고스트 더빙'을 통해 애완인형의 생산에 관여한 프로그래머 'KIM'은 그 자신이 전뇌화한 의식으로 사이버 공간과 일체화한 인물이면서 네트워크 내에서 자유자재로 타인의 전뇌를 해킹하는 것이 가능한 인물이다. KIM의 해킹으로 바트는 망상에 빠져 슈퍼마켓에서 자신의 팔에 총을 난사하며 토구사는 KIM의 저택에서 불과 몇분전의 기억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몇번이나 리플레이되는 상황을 경험한다. 전편에서 주체를 규정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기억'을 언급하던 감독은 여기서는 의식주체를 형성하는 기억의 상대성과 프로그램의 조작을 통한 왜곡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가 사이보그화된 바트와 온전한 인간의 신체를 가졌으나 뇌만이 전뇌화된 토구사가 전뇌 해킹을 통한 인식의 왜곡이라는 동일한 성격의 경험을 한다는 것은 기계화된 주체와 생물학적 주체의 차이를 무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제시되는 것이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된 기계인형이 살인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행동을 저지르는 상황은 무엇인가? 바트와 토구사가 겪는 의식의 착란과 거짓기억은 주체를 구성하는 자아와 코드변환으로 간단히 변경이 가능한 컴퓨터메모리간의 관계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신체를 포기하고 전뇌공간으로 사라진 쿠사나기를 그리워하는 바트가 마찬가지로 전뇌화된 의식으로 기계신체 사이를 옮겨다니는 해커 KIM의 존재를 면전에서 부정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감독이 보기에 기억조차도 이제는 인간 주체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기억이 외부의 물리적 침입과 조작으로 더 이상 신뢰
할수 없는 것이 되었을때 남는것은 기호로서 지각되는 육체 자체 뿐이다. 쿠사나기가 인형 '하다리'의 육체를 빌려 바트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표정과 목소리를 과거 쿠사나기 소령의 외양에 대한 바트의 기억에 가깝게 재현하고자 애쓰는 것은 의식에 선행하여 지각되는 신체 자체
의 중요성을 감독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 의식과 기계적 인지능력의 차이가 의미 없듯, 물리적 육체도 그 자체로서는 이미 필요에 따라 버리고 쓸수 있으며 기계가 유기적 신체의 일부 또는 전체를 대체할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갔다. 불완전한 기억 속에서 하나의
도상화된 기호로서만 존재하는 '육체'는 결국 어떤 본질적인 요소를 하나도 갖지 못한 껍데기일 뿐이며 이로서 전통적 인간을 구성하던 주체의 개념은 토대를 잃고 붕괴한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딸을 품에 안은 토구사를 개를 품에 안은 바트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끝나는 마지막 컷은 생물과
무생물, 유기적 신체와 기계화된 신체 사이의 경계에 대한 감독의 회의적인 시선을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야 어땠든 이원화된 체계에 대한 본질적 가정을 허물어뜨리려는 의도는 텍스트 안에서는 절반의 성공, 또는 절반의 시도만으로 그치고 있다. 전작에서 중요한 코드로 제시되었던 기계화된 신체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전작에서 이미 보여진 여성적 육체의 강화와 (불완전한) 탈신화화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듯 하다. 신체의 기계화로 여성 육체의 (남성에 대한) 상대적 약함과 거기에 수반되는 여성성에 대한 갖가지 신화적 관념을 극복하고 생물학적인 관계 없는 자체증식 또는 무한복제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감독의 관점은 도너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관점에 빚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극중에서 경시청의 기계 검시관으로 등장하는 해러웨이는 사이버네틱 육체이론을 극중에서 스스로 실천에 옮긴 도너 해러웨이 그 자체이다) 그러나 해러웨이의 주장은 단순한 여성적 육체의 강화와 역할변화라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의 문제설정을 거부하는 더욱 급진적인 언술이며 신체와 기계의 적극적인 융합을 통해 그 기원과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여성적 주체라는 개념을 넘어서 "부동의 정의 없이 무한히 생성 가능하며 해체와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있는" 다양한 성적 주체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이다.(Donna J. Haraway, A Cyborg Manifesto .1991) 여성적 범주를 거부하고 이의 해체를 주장한다는 면에서 근대적 페미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으로도 비치는 해러웨이의 이론은 오시이에게는 여성성과 기계의 융합이라는 '근대적' 문제설정으로 축소된다. 무한복제되어 재생산되는 애완인형 '하다리'는 여성성의 시각화
라는 측면에서 철저히 남성의 시각으로 구성된 10대 초반의 소녀의 육체를 형상화한 것이다.(여기에는 로리타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특유의 성적 지향을 의식했다는 혐의도 깔려있다) 극중에서 '섹서로이드'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성적 대상으로 기능할수 있는 이 인형들은 기계 자체로서의 무성성 또는 제 3의 성으로서 존재할 가능성을 박탈당하고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이분화된 범주에 철저히 묶여있다. '하다리'가 자신에게 프로그램된 역할을 거부하고 '소녀'로서는 상상할수 없는 완력으로 인간을 살상한다는 사실은 힘의 소유를 통한 전통적 여성성의 파괴라는, 통속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편적이 되어버린 테마를 되풀이한것에 불과하다. 이는 쿠사나기 소령이나 다른 인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쿠사나기는 원래의 (여성적) 육체를 포기하고 의식체만 남은 존재임에도 여성적 육체와 목소리,(남성에 대한) 이성애적 지향을 엿보임으로서 극중인물이나 관객에게 여전히 여성으로서 "지각된다." 모든 부분이 기계화된 신체조차도 시각적으로 이분화된 성적 특성에 따라 분리되며 육체를 벗어난 전뇌공간속의 의식조차도 성적 범주에 따라 판별된다는 사실은 인간과 기계의 본질적 차이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는 감독의 관점이 성적 범주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믿음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질'에 대한 불철저한 관점은 이리저리 벌려놓은 질문들과 결론 사이에 치명적인 균열을 가져온다. "지각되는" 육체를 포기하고 사이버스페이스와 동화되어 의식체로서만 존재하던 쿠사나기 소령은 다른 육체를 빌려 바트와 재회한다.(또는 "지각된다") 바트와 관객들은 불완전하게 재현된 인형의 육체를 통해 쿠사나기의 의식체가 존재함을 '인식한다'. 매개로서의 육체는 바뀌었을지언정 재현의 주체로서 쿠사나기의 의식체는 스스로 쿠사나기라는 자의식을 갖고 인식하며 이를 실천한다. 결국 인식의 재구성과 상호 피드백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주체의 해체구성을 시도하던 이야기는 쿠사나기와 바트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두개의 시계처럼 따로 돌아가는" 정신과 육체의 데카르트적인 이분법과, '고스트'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덧씌워진 인간 정신의 본질론으로 회귀하고 만다. 인간의식의 임의적인 조작과 수치화를 통한 기계로의 전이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주면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양자간의 싱크로를 미래사회의 가능성으로 이야기하는 오시이의 관점은 결국 육체와 분리된 어떤 불변의 본질(고스트=영혼)을 가정함으로서 자가당착에 빠진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영화의 수많은 문제제기를 농담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오시이의 관점이 실은 그리 독창적인 것이 아니며 이미 제기된 여러 논의들에 빚지고 있음을 인정할때 극중에서 드러나는 입장은 그러한 이론들이 펼치는 주장에 비추어 훨씬 덜 나아간 차원에 머물고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산만하게 제기된 문제들은 바트와 쿠사나기의 재회라는 상업적 배려에서 비롯된 장면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오시이의 절반의 실패는 그가 "너무 어려운" 영화를 만들려는데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너무 쉽게 결말지으려 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Comment : 6,  Read : 7299,  IP : 221.149.13.46
2005/01/05 Wed 02:54:00 → 2005/01/05 Wed 03:02:25
capcold 

!@#... 지적해주신 여러 논점들을, 저는 이렇게 요약하곤 합니다: "오시이는 언젠가부터,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정작 해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포기해버렸다". 1편의 유일한 성과이자 결론이였던 '소좌도 인형사도 아닌 새로운 정보생명체'가, 2편에서는 그냥 소좌로 돌변해서 바토의 수호천사역을 자임하는 것만 봐도 명확해지죠. 팬(?)들의 성원이 작가의 재능을 버려 놓은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고 있습니다.

2005/01/05
yasujiro 

개인적인 입장은, 이 감독에 대한 박수부대들(주로 영화쪽의)의 막연한 찬사와 반대자(라기보다는 거의 증오하는 수준)들의 노골적인 비하의 양 극단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한 비평문화의 부재가 지금의 오시이가 정체되어있는 원인이라고 볼때 말씀하신 입장에 동감합니다.(이러저런걸 다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만)

2005/01/05
pseudorand 

사실 오시이에 대한 혐오는 상당 부분 영화 평론가와 기자들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SF에, 아니메에, 때로는 오시이에마저 무지한 평론가들이 공각기동대를 보고 마치 이러한 주제과 관점을 그가 처음 도입했고 자신들이 발견한 마냥 호들갑을 떨었죠. 참조 작품이라야 대부분 블레이드 런너 하나 정도고, 오시이의 작품은 ' SF' '아니메'가 아니라 철학 SF, 철학 아니메다라고 하는 평론가들까지 있으니 반감이 들 수 밖에요.

2005/01/05
pseudorand 

이노센스는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도돌이 씬 외에는 너무 느슨해서 맥빠지더군요. 막판의 쿠사나기라던가, 중간의 개라던가.

2005/01/05
capcold 

!@#... 공각기동대 세계관/문제의식의 진수는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 그리고 TV시리즈인 Stand Alone Complex 였죠. 이 작품들이 비교범주로 버티고 서 있는 한, 제가 오시이 마모루판 공각을 높게 평가해줄 일은 아마 절대 없지 않을까 합니다.

2005/01/05
yasujiro 

'영화적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영화평론계의 선입견, 영화나 기타 장르에 대한 만화팬들의 적대감(또는 열등감)양쪽에서 벗어나 넓은 의미의 문화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이런 종류의 작품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평가가 가능할것 같습니다. 영화든 만화든 그 자체로서는 그걸 붙들고 놓치면 큰일날만한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200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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