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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의 만화인생 ③ - 5백원과 8백원, 해적판 만화와의 만남
앵두의 만화인생 ③ - 5백원과 8백원, 해적판 만화와의 만남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을 졸업하고 중학교라는 낯선 곳에 진학을 하게 된 나.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무언가 삭막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초등학교에 없는 매점이라는 것과 학교 마크가 달린 명찰이라는 것이 마냥 신기해했었다. 하지만 새 학교에 진학했다는 즐거움은 잠시, 백정같은 선생들의 매타작은 시작됐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해보면, 왜 우리들이 그렇게 선생이라는 작자들에게 맞고 다녔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내 생애에 중학교만큼 선생들에게 구타를 당한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거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때의 선생들의 의식 속에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라는 사고방식이 깊게 박혀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멍이 든 종아리를 들고 다니던 시절, 당시에 우리들의 놀이는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얼음땡 같은 초등학교 수준을 못 넘는 놀이를 하던가 어른들 몰래 오락실에 가서 오락을 하곤 했다. 당시에 오락실 한판 가격이 백원이었는데 지금도 백원인걸 보니 오락실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신기한 업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리고 나에겐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해적판 만화를 사 모으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만화방이라는 곳이 음침한 지하에 있고 만화책도 대부분 대본소 만화라 중학생들이 가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게다가 대여점도 없었고, 나의 낙이었던 이동만화방도 어느순간 사라지자 나는 조금 무료해졌다. 물론 당시, 만화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것이나 구멍가게에서 불량식품을 사먹는 것 이상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당시에는 BB탄 총으로 총싸움을 하거나 TAMIYA사의 모형자동차를 굴리는데 더 즐거움을 얻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만화책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게 해 주었던 것은 바로 이 해적판 만화의 등장 때부터 것이다.

해적판 만화가 등장한 곳은 문방구였다. 그 조그만 공간 속에 학용품, 갖가지 색깔의 볼펜, 프라모델이 뒤섞인 가운데 한쪽 구석에 5백원짜리 만화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에 등장한 것은 <드래곤볼>과 <북두신권> 등 이미 유명해진 만화들이었다. 그 만화들은 5백원짜리 조그만 만화책이었기 때문에 질도 안 좋았고, 번역도 엉망이고, 순전히 엉터리 해적판이었다. 우리들은 단지 드래곤볼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구입했다.

하지만 해적판 만화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박은 것은 아마도 8백원짜리의 등장 때부터 일 것이다. 확실히 8백원짜리 만화는 5백원짜리에 비해 크기도 커서 보기도 좋았고, <드래곤볼>처럼 한정된 만화가 아니라 갖가지 종류가 쏟아졌던 것이다.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가격도 싸고 내용도 훌륭한 이 해적판 만화는 하나의 빛이었고 하나의 보물이었다. 그 빽빽하고 정신없었던 문방구에 이런 보물들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그때 등장한 만화들은 실로 걸작들이었다. <오렌지 로드>, <캠퍼스 블루스 - 별볼일 없는 블루스>, <전영소녀 - 비디오걸>, <개구장이 하숙생 - 라이벌>, <장군의 딸 - 야와라>, <엔젤비트> 등등 지금에 봐도 명작이었던 작품이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끈 작품들이 5백원과 8백원이라는 싼 가격에 공급이 되니 한국만화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재밌는 일은 해적판 만화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는지, 날이 갈수록 가격이 올랐다는 점이다. 물론 8백원짜리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1천원짜리도 등장했고 1천2백원짜리와 1천5백원짜리도 나중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2천원이나 3천원짜리도 나타나 해적판 만화계의 고급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해적판 만화에도 인기도가 있어서, 재밌는 만화들의 경우엔 뒷부분에 꼭 떨거지 부록만화가 있었던 것이다. 만화책이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떨거지 만화의 양은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본 만화의 양을 뒤집을 정도였다. 어떨 때는 본 만화는 1/5이었고 나머지 4/5가 떨거지 만화라 무척 화를 낸 기억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추억이다.

아마 내가 만화책에 대한 광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백원짜리 만화책 <전영소녀>를 모으면서 일 것이다. 그게 아마 2십 몇 권쯤에서 완결이 났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것을 다 모아놓고 쳐다보았을 때의 기쁨!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감을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 이 순간부터 나는 매니아, 혹은 오타쿠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해적판 일본만화들은 나에게 알게 모르게 일본문화를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일인지 부정적인 일인지는 지금도 판단이 안서지만, 대학에 들어와 문학에 심취하게 된 것도 순전히 일본문학 때문이었고, 우리나라 문학보다 일본문학에 더 끌리는 것은 어찌보면 서글픈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Comment : 2,  Read : 8558,  IP : 218.155.97.226
2003/09/19 Fri 10:39:38
aspiration 

전 그 떨거지 만화가 더 좋더군요.
정식판에는 없는 그 떨거지 만화들이 가끔 그립습니다.
하지만 500원도 부담스러워서 구입할까?말까?고민하던 시절도 있었고 전영소녀 셋트를 언젠가는 사고싶다라는 바램도 했지요.
당시 28000원에 팔았던것 같은데 정말 무지 가지고 싶었던적이....

2003/09/26
tepi 

떨거지 만화가 본편을 압도하는 경우도 가끔 생겼죠.. -o-
실상 떨거지로 붙은 만화가 역사에 남을 명작이었던 것인데 당시엔 몰랐죠 우리들은.

200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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